미국 국방부와 해군이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에 전투함과 급유함 관련 정보요청(RFI)을 공식 발송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줄 수 있느냐"고 직접 물어본 시점과 맞물린 움직임입니다.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한국 조선업이 이제 상선을 넘어 미국의 안보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한미조선협력, 왜 지금 이 시점인가
미 연방조달규정(FAR)에 따르면 정보요청(RFI·Requests for Information)은 정부가 시장 정보를 파악하고 계획을 수립할 때 거치는 공식 절차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이걸 살 수도 있는데, 너희 얼마나 만들 수 있어?"를 공식 문서로 묻는 단계입니다. 계약이나 입찰 확정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절차가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실무 검토에 진입했다는 신호입니다.
한미 조선협력은 이미 정상 차원에서 물꼬가 트인 상태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군함 10척을 빠르게 만들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양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가운데 1,500억 달러를 조선 협력에 투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정상 간 메시지가 나온 뒤 국방부와 해군이 실무 검토에 나선 순서는 꽤 전형적인 방산 협력의 흐름입니다.
제가 이 흐름에서 눈여겨본 건 타이밍입니다. 미 해군참모총장 대릴 커들은 지난 2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기 상황 대응을 위해 소규모 함정 확대 배치가 필요하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출처: AP News). 대형 항모 중심 전력만으로는 인도·태평양처럼 광활한 해역에서 동시다발 작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그 빈자리를 채울 중형급 전투함 후보로 한국 조선사가 올라온 셈입니다.
충남급 호위함, 미국이 직접 승선한 이유
이번 RFI에서 미 국방부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함정이 울산급 배치-Ⅲ, 즉 충남급 호위함입니다. 경하배수량 3,600톤, 전장 129m 규모의 이 함정은 기존 인천급(울산급 배치-Ⅰ)과 대구급(울산급 배치-Ⅱ) 대비 전투 체계와 생존성이 한 단계 올라간 최신예 호위함입니다. 여기서 경하배수량이란 연료·탄약·승조원 등 가변 하중을 제외한 함정 자체의 무게를 뜻하며, 함정의 기본 크기와 구조 강도를 가늠하는 기준 수치입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미 국방부 실사단이 지난 5월 SK오션플랜트 고성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건조 중인 충남급에 승선했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로 검토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올라가 내외부를 살펴보는 건 온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 정도 수준의 실사가 이뤄졌다는 건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충남급 건조에는 세 곳의 조선사가 나눠 참여하고 있습니다.
- HD현대중공업: 상세설계와 선도함(1번함) 건조 담당
- SK오션플랜트: 2~4번함 건조 진행 중
- 한화오션: 후속 5, 6번함 수주 완료
이 구조는 미국 입장에서 매우 실용적인 정보입니다. 한 조선사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는 사실, 즉 한국의 특수선 생산 분산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미 해군이 원하는 빠른 건조 속도와 물량 대응 능력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충남급이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MRO(유지·보수·정비) 역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MRO란 함정을 실전 배치한 이후 장기적으로 작동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정비 체계 전반을 말합니다. 미국이 한국 함정을 도입하거나 협력한다면 건조 이후 운용 단계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가 핵심 조건이 됩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 조선사들이 얼마나 준비됐는지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방산전망, 기회는 맞지만 장벽도 현실이다
이번 협력이 실제 수주로 이어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법적 장벽이 있습니다. 반스-톨레프슨 수정법(Byrnes-Tollefson Amendment)이 그것입니다. 이 법은 미국 해군 함정의 해외 조선소 건조를 사실상 금지하는 규정으로, 미국 조선업 보호와 군사 기밀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합니다. 쉽게 말해 "미국 군함은 미국 땅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조항이 완화되지 않으면 한국 국내 조선소에서 미국 전투함을 직접 건조하는 방식은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 조선사들은 현지화 전략으로 우회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화오션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고 전투함 건조를 위한 라이선스 취득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헌팅턴 잉걸스(Huntington Ingalls Industries)와, 삼성중공업은 제너럴 다이내믹스 나스코(General Dynamics NASSCO)와 각각 협력 관계를 구축했습니다(출처: 미 국방부). 이 움직임을 보면서 저는 한국 조선사들이 단순히 "수출하겠다"는 게 아니라 미국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고 봤습니다.
일본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일본 정부와 이마바리 조선·가와사키 중공업·나무라 조선소는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LNG 운반선 기술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일본은 2019년을 마지막으로 LNG선 인도 실적이 없습니다. 한국이 그 기술력을 가장 잘 갖춘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미국은 군함, 일본은 LNG선, 방향은 다르지만 한국 조선업에 손을 내미는 구조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술 협력에는 항상 양면이 있습니다. 협력을 통해 경쟁자를 키울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LNG선 분야에서 일본이 2035년부터 연 3~5척 건조를 목표로 한다면, 장기적으로 시장 경쟁자가 하나 더 생기는 셈입니다. 핵심 설계 기술 보호 수준을 어디까지로 설정할지, 협력의 경계를 어떻게 긋느냐가 앞으로의 협상 테이블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RFI를 받았다는 게 한국 조선사가 미국 군함 수주를 확정받은 건가요?
A. 아닙니다. RFI(정보요청)는 미국 정부가 시장 정보를 파악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초기 절차로, 계약이나 입찰 확정과는 전혀 다릅니다. 실제 수주로 이어지려면 예산 반영, 의회 승인, 법적 검토, 업체 선정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Q.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나요?
A. 방산업계에서는 미국 국방부가 현지 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내년도 예산 반영을 위한 연구용역 성격의 검토를 진행 중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미국 내 조선업 보호 논리와 의회 반발이 강하기 때문에, 전면 완화보다는 제한적 예외 적용 가능성이 더 현실적입니다.
Q. 충남급 호위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함정인가요?
A. 충남급은 울산급 배치-Ⅲ로도 불리는 한국 해군의 최신예 호위함으로, 경하배수량 3,600톤·전장 129m 규모입니다. 기존 인천급(배치-Ⅰ)과 대구급(배치-Ⅱ) 대비 전투 체계와 생존성이 개선됐으며,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고 SK오션플랜트·한화오션이 후속함을 건조 중입니다.
Q. 일본이 LNG선 기술을 한국에 요청한 이유가 뭔가요?
A. 일본은 2019년을 마지막으로 LNG 운반선 인도 실적이 없으며, 현재 한국과 중국에 밀려 LNG선 경쟁력을 사실상 잃은 상태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마바리 조선·가와사키 중공업·나무라 조선소를 중심으로 2035년부터 연 3~5척 건조를 목표로 재건을 추진 중이며, 그 기술 기반을 갖춘 곳으로 한국 조선사에 협력을 요청한 것입니다.
결론
미국 국방부와 해군이 한국 조선사에 RFI를 보낸 것은 한국 조선업이 상선 강국을 넘어 글로벌 안보 공급망의 파트너로 올라섰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충남급 호위함에 대한 현장 실사까지 이뤄졌다는 사실은, 적어도 미국이 한국 함정 기술을 실물로 검토할 만큼 진지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핵심은 이렇습니다. 기회는 분명히 있지만, 아직은 초입 단계입니다.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이라는 장벽, 미국 내 자국 일자리 보호 논리, 예산과 의회 승인 과정이 모두 남아 있습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이 기회를 실제 계약으로 전환하려면 건조 속도와 기술력만큼이나 현지화 전략, MRO 체계, 규제 대응 능력을 동시에 갖춰야 합니다. 앞으로 한미 조선협력 관련 정책 변화와 예산 반영 여부를 꾸준히 확인해두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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